칼럼&논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5일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한국에 대해 9일부터 입국 제한 조치를 하자, 한국 정부도 9일부터 한국에 입국하는 일본인들에게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했다. 한·일 관계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는 듯하다.
아베 총리의 조치는 한국 정부와 사전 교감이나 소통이 없이 관저 주도로 발표된 점에서 비우호적 행동이고, 일본에 입국하는 한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2주간 자비로 격리하도록 요청한 점에서 사실상의 입국 금지 조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월 방일이 무산되자 한국과 중국을 다시 정치적 도마에 올렸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른 국가들에는 침묵을 지켜오던 한국 정부도 일본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응 조치를 내놨다. 양국이 외교보다 정치를 하는 양상이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강경 조치에 대해 대응 조치를 한 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중국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면서 아무런 대응 조치도 않던 정부가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과민반응을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의료전문가들이 일찍이 코로나19의 유입 경로가 중국이 분명한 만큼 중국발 외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요청했는데도 정부는 중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고 ‘한·중은 운명 공동체’라고까지 하는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는 하루 만에 발 빠른 대응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격리되고 재중 교포들이 차별을 당해도 입을 다문 채 싫은 내색조차 않던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목소리를 높이고 역정을 낸다. 중국에 뺨 맞고 일본에 화풀이하는 격이다.
중국을 포함해, 사실상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한 100여 나라에 대해선 왜 적절한 대응 조치를 않는지 궁금하다. 북한에는 방역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고, 중국에는 방호복과 마스크를 내주면서, 정작 우리 국민에겐 왜 마스크 하나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는지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이 생명과 안전을 정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안심을 하지 못한다. 대내적으론 각자도생(各自圖生) 형국이고, 대외적으론 국격이 만신창이다.
방역과 국민 보건은 정치인들의 놀음판이 아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 보건과 생명 보호가 가장 큰 기준이 돼야 한다. 전문가들의 충고를 존중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게 최상책이다.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선제적으로 마스크 해외 유출을 차단하면서 공적인 루트로 국민에게 보급한 대만의 사례가 자주 보도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정치인들은 한발 물러서서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일본이 괘씸하다고 감정적으로 갈등을 양산한다면 하수(下手) 정치밖에 안 된다. 한·일 양국이 코로나19의 확산 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입국 제한 조치를 조속히 풀 수 있는 방책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적(敵)은 일본이나 신천지가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다. 또, 양국은 일반 관광객에 대한 입국 제한은 받아들이되, 단순 여행이나 자기 선택에 의한 방문이 아닌 비즈니스·유학·외교단 및 공무 방문의 길은 열어 놓고 순차적으로 조속히 정상화하는 현실적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보호를 위한 방역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 감정적 대응을 통해 불필요한 외교적 갈등을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부와 정치인들의 몫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학 연구소장
[출처: 문화일보 2020.03,10 포럼] 日에 감정적 차별 대응은 下手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