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7일부터 9일까지 통일부가 주최한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FP)은 2010년 9월 9일과 1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처음 열린 코리아글로벌포럼(KGF)의 후신이다. 당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11개 나라 정부와 민간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논의했다. 통일부 출입 기자로 “통일이 빠르게 올 수도 있다”는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과 “성급한 통일보다 남북한 공존이 중요하다”는 게오르기 톨로라야 전 러시아 동북아국장의 설전을 중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11회 포럼은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통일부의 연례 글로벌 포럼이라는 점 외엔 다른 점이 많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청중 없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코언과 톨로라야의 설전처럼 10년 전엔 ‘통일’이 화두였지만 이번엔 온통 ‘평화’ 일색이었다. 200명 가까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한 30여 개의 세션과 발표 제목에 ‘통일’이 들어간 건 단 하나인데 ‘평화’가 들어간 건 13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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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10년 전엔 통일이 유행이었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에 경악했고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진통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던진 ‘통일세’를 시작으로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여론이 국내외에 조성됐다. 1회 포럼에 미국 민간 대표로 참여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다음 달 같은 장소에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연 국제학술회의에서 “한반도 통일만이 북핵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이명박 정부가 말기에 ‘통일 항아리’를 빚어 돌리고 박근혜 정부가 ‘통일 대박’ 이벤트를 흥행시키면서 헌법 가치인 통일은 국내정치 이벤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남한 주도 통일의 환상적인 베스트 시나리오를 그리기도 했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능력과 실천이 없는 통일 대박 구호는 황당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앞장선 현 정부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2017년 집권하자마자 통일 대신 평화를 한반도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과 광복절 등에 내놓는 공식 담화에서, 정부의 통일정책 문서에서, 각급 학교의 통일교육 교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평화가 채워졌다. 지난해엔 코리아글로벌포럼도 한반도국제평화포럼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부와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통일’이 언제 빠지는지가 관심사일 정도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포럼 개회식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를 강조했다. 북-미 대화 놀음이 한창이던 2018년 6월 한 유명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이 미국의 북한 비핵화의 목표(CVI-Dismantlement)를 패러디해 투자자들에게 흥행시킨 것(C-Visible-I-Prosperity)의 아류인지나 알고 말한 것일까. 3일간의 포럼은 분야별로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주류였고, ‘문재인표 평화’의 철학적 이론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평화를 원한다면 조용히 힘을 길러 전쟁에 대비하라’는 현실주의적 평화관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포럼 둘째날에는 민간단체가 지원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북한 당국이 반송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상대방이 호응하지 않는 평화 논의는 청중이 없는 토론장만큼이나 공허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출처: 동아일보 2020.09.11 오늘과 내일] 이인영 통일부의 공허한 '기승전 평화'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