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신석호] '한미 외교' 선동말고 협상으로

한미동맹의 유지와 강화가 임무여야 할 이수혁 주미대사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것(한미동맹)을 계속해야 한다는 건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4일 자신의 SNS에 “대등한 관계에서 외교를 펼쳐야 하는 주권 국가의 외교관으로서 당연한 태도”라고 두둔했다. “‘대한민국 First(제일주의)’라는 관점에서 발언을 하면 금방이라도 한미동맹이 깨질 것처럼 난리가 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아메리카 First’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은 주권국가라는 점에서는 대등하지만 그 힘은 같지 않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태두로 불리는 고 한스 모겐소 시카고대 교수는 대표 저서 ‘국가 간의 정치’에서 국력을 아홉 가지 요소로 구분했는데 한국은 어느 면에서도 미국을 앞서지 못한다. 땅도 좁고 자연자원과 공업 능력도 부족하고 군비와 인구도 적다. 국민성과 국민의 사기, 외교의 질, 정부의 질도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한미동맹을 전형적인 비대칭 동맹이라고 한다. 약소국인 한국이 국가로서의 자율성을 일부분 희생하고 대신 강대국인 미국의 안보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자율성·안보 교환 동맹’이라고도 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아메리카 First’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가 희생하는 자율성의 정도가 대가로 받는 안보상의 혜택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건 대중 선동이 아니라 치밀한 협상으로 얻어낼 일이다.

 

모든 동맹에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한미동맹이 김일성의 침략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승리의 역사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은 중국도 인정하고 있다.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는 재직 당시인 2018년 11월 본보 화정평화재단 국가대전략 강좌에 나와 “동맹은 양자에 국한되어야 하며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한미)동맹의 역사적인 배경은 존중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은 김일성의 6·25 도발을 지원했다가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중국 인민을 희생시켰다.


침략자인 중국도 인정하는 한미동맹을 지금 수정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며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가식적인 ‘눈물’로 시작했다가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괴물’로 끝내는 광경을 보지도 못했나. 김정은이 10년 집권을 넘어 영구 집권을 굳히려 하는 지금이야말로 한미동맹을 외치는 것이 ‘대한민국 First’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틈만 나면 한미동맹을 흔들어온 이른바 ‘운동권 자주파 집권세력’의 뿌리 깊은 반미 인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약소국의 외교는 강대국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아는데 모르는 척한다면 누구를 향한 발언일까. 북한일까? 중국일까? 아니면 정권 재창출을 담보해줄 젊은 자주파 유권자들일까.


물론 6·25전쟁 직후와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미국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국력은 상대적이다. 세계 제국을 이뤘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도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흥 강대국 미국과 소련 최고지도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중국과 북한은 아직 한목소리로 ‘항미원조’와 ‘혈맹’을 외치고 있는데 이 정권은 임기 내 전시작전권 전환에 매달리다 ‘사실상 불가’ 통보를 받는 외교 참사에 이르렀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출처: 동아일보 2020.10.23 오늘과 내일] '한미 외교' 선동 말고 협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