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우아한 청년 발언대) 예비 북한 연구자가 우리 사회에 드리는 말씀

저는 앞으로 북한 경제를 연구하고자 하는 청년입니다. 이를 위해 경제학, 특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경제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연구하는 ‘체제이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미약한 지식으로 동아일보의 ‘우아한 청년 발언대’에 주로 북한 경제와 관련된 글들을 스무 편 가량 썼습니다. 이제 입대하게 되어 더 이상 기고할 수 없게 되었고, 이번 마지막 칼럼을 통해 제 글에 애정을 가져주신 분들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예비 북한 연구자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학부를 다닐 동안에 학자가 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는 제 선생님들과 같이, 학자로서의 임무를 크게 ‘학문탐구’와 ‘후학양성’, ‘사회기여’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나중에 사회기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다가, 신문 기고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란에도 ‘경제학자’와 함께 ‘신문에 글 쓰는 사람’을 병행해 적던 저의 오래된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제 선생님들 중에도 신문에 기고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생각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아일보의 우아한 프로젝트와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라는 걸 알아채고 열심히 썼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하지만 부딪치면서 비로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깊은 신념이고, 여러 졸작을 내야만 비로소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사회기여의 연습이 필요한 저에게 우아한은 정말 즐거운 활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아일보라는 공신력 있는 언론에 실리는 글이기에 절대 대충 쓸 수는 없었습니다. 칼럼을 한 편 쓸 때마다 평균적으로 책 1권과 논문 3권을 참고했습니다. 아직 너무 부족하기에,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쓴 글을 보내기 전에는 약 10회에 걸쳐서 다시 읽어보면서 논리 및 표현을 다듬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은 ‘혹시 표절로 지적받을 만한 구절이 있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의미 없이 베끼지는 않았는가’였습니다. 신선한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면 굳이 똑같은 칼럼을 한편 더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정보를 적극 받아들이는 가운데에도 독창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칼럼을 쓰면서 제일 신경을 썼던 점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글재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이해하시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어느 댓글에서, “세계가 돌아가는 게 너무 궁금해서 꼭 알고 싶은데 배움이 짧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좀 더 쉽게 써달라”라는 말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댓글이 제 마음에 깊이 박혔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사회기여를 하는 연습을 하고 있고, 칼럼은 제가 아닌 다른 분들을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공부하고 있는 경제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 쉽게 쓰기 위해서는 더 깊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로써 다른 분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실 수 있으셨다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습니다.










한편 아무리 북한의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인신공격성 묘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꼭 비판하고 싶다면 문학작품과 예술을 이용해 품격 있는 풍자를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제 글을 공격적인 표현으로 더럽히지 않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진짜 이유는 과녁을 맞추어 ‘정밀 타격’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기독교 격언과 같이, 저는 진짜 문제는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아이디어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죽지만 아이디어는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도 사회주의가 백 년 이상 살아남아 온 인류를 괴롭게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잘못된 아이디어를 비판해서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국내 정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저와 같은 경제학도들에게는, 정치의 최소 단위가 ‘사람’이 아닌 ‘정책’입니다. 이 생각은 저의 칼럼 중 “사람이 아니라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서는 여당만 비판하는 제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셨을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깊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는 여당이 주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집행되는 정책에 집중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야당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약 현 야당이 집권했을 경우에도, 저는 현재와 동일한 기준 및 강도로 똑같이 비판했을 것이라는 점을 확언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Pixabay

이제 독자 여러분께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드릴 부탁은, 우리 사회가 서로 화합했으면 좋겠다는 점입니다. “한국 선거의 ‘국제전’ 양상 사라져야 한다”에서 썼듯이, 어떤 때는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를 ‘빨갱이’와 ‘토착왜구’로 몰아붙이는 이념전쟁이 거셉니다. 하지만 링컨이 말했듯, “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장기 국정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남남갈등에 사로잡히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적대와 비난 대신 용서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직까지도 사회적 약자, 특히 탈북민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 인격의 문제 뿐 아니라, 한국의 국익에도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특히 탈북민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는 성공적인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모든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민주 국가에서는 위대한 한 사람보다 현명한 보통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이는 “잘못된 통계와 사회적 신기루”에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어떤 언론들은 특히 더 편향적인 보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독자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언론들만 골라 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론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창으로서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리한 국면에서 북한과 맞서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확증 편향’이 아니라 ‘인식과 납득’이 필요한 때입니다.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문가를 존중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그렇고, 제가 공부하면서 만난 예비 북한 연구자들은 절대로 돈이나 명예를 좇아 이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생각했다면 더 좋은 길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다만 한국이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버티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저희가 연구한 것들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고, 그로써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따금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치권력의 의중대로만 정책이 집행될 때는 정말이지 너무 속상하고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언제나 전문가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한 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소중한 기회를 주셨을 뿐 아니라 부족한 글을 내기 전 면밀히 검토해 주신, 우아한 플랫폼 관계자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주요 일간지인 동아일보에 글을 싣게 된 것은 저에게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습니다. 아마 북한 경제 및 체제이행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된 것 같습니다. 부탁드리건대 한반도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넓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정말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한반도문제연구회에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도교수님이신 윤영관 교수님과 다른 회원님들이,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부족한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글을 쓴다는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한반도문제연구회의 응원과 격려에 힘을 얻곤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제 칼럼들을 열심히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하게 됩니다. 공부를 정말 하고 싶은 저로서는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아쉽습니다.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비교할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딸의 딸을 저보다 더 좋은 나라에서 살게 해주는 목표를 가지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문의 여지없이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제 미래의 손녀에게도 국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정말 성실하게 지키겠습니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