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2)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김정은 신년사와 문재인의 대응



  김정은에게 2018년 새해맞이는 일대 축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김정은의 행운은 그의 신년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신년사에서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는 문 대통령이 간절하게 바라던 바였다. 문 대통령 본인의 표현대로 ‘기적과 같은 남북대화‘의 기회가 김정은의 신년사로 찾아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남북고위급당국자회담 개최를 북한에 제의했다. 북측이 이를 전격적으로 수락함으로써 남북고위급회담이 성사되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5년 12월 마지막으로 열린지 2년 1개월 만인 2018년 1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는 남측의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북측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의 평창올림픽대회 참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 개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 분야 회담 개최 등 3개 항에 일사천리로 합의했다. 북측은 평창에 선수단 15명을 대규모 미녀응원단과 함께 파견해 남측과 단일팀을 만들고 삼지연관현악단을 보내 강릉과 서울에서 1회씩 연주키로 했다.


  2018년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일 낮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대표단이 항공편으로 인천을 통해 입국해 개회식에 참석했다. 대표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최휘 당 부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그리고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들어있었다. 대표단은 이튿날 청와대를 예방하고 오찬을 겸한 접견 자리에서 문 대통령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은 오빠의 문 대통령 평양초청 친서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켜나가자”고 답했다. 오찬 석상에서 김여정은 “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 치켜세웠다. 25일 열린 평창올림픽 폐회식에는 북의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조국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이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리선권과 함께 입국해서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이 김정은의 특사로 서울을 방문한데 대한 답방형식으로 3월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고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차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3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단원으로 하는 대통령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이들은 1박2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정권 수뇌들과 회동했다. 김정은은 특사단을 따뜻이 환영하고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는 등 6개항에 합의했다. 나머지 5개항은 남북정상간 핫라인전화 설치, 북측의 체제안전 보장 시의 비핵화 의지 표명, 북측의 비핵화협의를 위한 미국과의 대화용의, 남북 및 북미 대화기간 중 북측의 전략도발 중지, 북측의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대남 불사용이다.


  정의용 단장은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평양으로부터 귀경 이틀 후인 3월 8일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정의용은 9일(현지시간 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그를 평양에 초청한다는 김정은의 뜻을 전달했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핵과 미사일의 실험 자제를 약속하고, 한미양국의 정례적 군사훈련의 계속에 이해를 표명한 사실도 정의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다혈질인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 제의를 받아들여 미북정상회담을 갖기로 전격적으로 결정한 다음 정의용으로 하여금 백악관에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은과의 접촉결과를 발표케 했다. 물에 빠져 익사직전의 김정은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때로는 유익할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만약 정의용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 내용이 전부 또는 일부 비밀에 부쳐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미북정상회담 개최 결정이 공표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중국 측은 그처럼 강하게 자극받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시진핑 중국주석은 즉각 미북관계 개선을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그 후 김정은의 태도변화에는 시진핑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김정은의 화려한 데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이 휘황찬란한 국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첫 무대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 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11년만의 일이다.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3개항의 합의사항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주요내용은 ① 남북공동연락소의 설치 등 남북관계의 개선, ② 확성기 방송 중단과 서해평화수역 설치 등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 그리고 ③ 2018년 연내의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추진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판문점선언에는 막상 가장 중요한 북핵 폐기문제에 관해서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원론적인 대목만 들어갔다. 북한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남북간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정면 배치된다는 사실도 양측은 잊어버린 듯했다. 따지고 보면 이날 판문점정상회담은 북측이 더 급해서 열린 회담이었는데도 합의내용은 이상하게도 그 반대였다. 남측이 부담할 사항과 양보한 사항이 훨씬 더 많았다. 제1조의 ‘공동번영과 자주통일’, 그리고 ‘민족자주의 원칙’이라는 표현과 정상회담 합의사항의 조속한 실행 대목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의 중지, 서해평화수역 설정과 북핵폐기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측의 ‘책임이행’이라는 애매하고 이상한 표현이 그렇다.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중립지대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진 청와대



  김정은은 시진핑의 초청을 받고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한 다음에는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김정은의 태도는 당당해 지고 시진핑과 사전에 합의한 대로 북핵문제의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해결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역사적인 미북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내세운 북핵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해체) 원칙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 대신 간단하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 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문 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을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가 전쟁과 적대시대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아가는 아주 역사적인 위업”이라고 찬양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과의 교섭기간 중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한다고 밝힌 다음 난데없이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해 한국국민들에게 새로운 안보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두 달이 가까워 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은 이 정상회담의 다른 합의사항인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의 유해 송환에 적극적이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지난 7월 27일 원산으로 날아간 미군공군 수송기는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오산 기지를 통해 하와이로 운구했다. 유해 송환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전사자 유해를 넘겨준데 대해 '감사하다'를 연발하면서 지지부진한 북핵폐기 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계속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북핵외교가 아직은 실패하지 않았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 유화정책 우려하는 미국 학계와 의회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전사자 유해송환이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동아일보가 지난 7월말 조사한 미국의 동북아문제 전문가 7명은 북한의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종전선언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표명했다. 1994년 제네바 협상에 참여했던 대화파 북한 전문가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특사도 “유해 송환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움직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북-미 간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국제기구를 통해 모든 핵시설을 감독하면서 폐기하는 절차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북 회담의 짤막한 공동성명은 비핵화를 향한 불안하고 포괄적인 약속이었는데, 이를 구체화하려는 폼페이오 장관의 노력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시하며 싱가포르 합의정신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해 송환 조치와 남북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에 대해 “낮은 곳에 달린 과일을 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과거 평양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써왔던 지연전술”이라고 평가했다. 클링너는 또한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함께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도 축소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핵확산 금지 정책을 총괄했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도 “종전선언을 하기에 앞 북한은 이에 대한 상호 조치로 ‘추가적인 핵무기와 미사일 생산을 멈추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한다면 본질적인 비핵화 절차의 조건들에 대한 협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선언이 종이조각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행위지만 일단 미국이 이 선언에 참여하고 나면 기존의 가장 강력한 대북 지렛대인 군사옵션 명분을 잃게 된다고 이들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중국 전문가인 윤선 스팀슨센터 동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종전선언 이후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말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 내 미군의 존속 명분이 크게 줄어드는 만큼, 북한이 미군 철수와 한미 군사동맹의 종결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스나이더 연구원은 “북한은 종전선언에 더해 미국의 간섭을 제거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평화협정까지 원하고 있으므로 이에 상응해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 축소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크로닌 소장은 “한미가 김정은 위원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의지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동맹을 약화시키는 변수가 된 만큼, 향후 협상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 정부 등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이 고리에 파고들 가능성이 큰데 (한미공조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상 동아일보 2018.7.30, “유해송환-이산상봉, 낮은 곳 과일만 따는 격…평양의 지연전술”,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미국의회는 국민여론이 북한에 냉담한 점에 유의해 의회 동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상하원 군사위는 7월 23일 약 7160억 달러(약 807조5700억원) 규모의 새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최종 합의하면서 현재 공식적으로 약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병력을 2만2천명 미만으로 줄일 시 국방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의회는 다만 예외 경우를 남겼는데 주한미군을 2만2천명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 ‘미국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국방장관이 의회에 입증할 경우 예산사용 금지 조항을 유예하도록 했다. 이 수권 법안은 7월 26일과 8월 1일에 각각 하원과 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만 하면 국방수권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끝>



(2018년 8월 8일 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