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신석호] 남북 언론교류 이전에 고민해야 할 세 가지



2000년대 중반 평양 시내 농촌지역에서 만난 북한 부부. 왕래가 잦아지고 신뢰가 쌓이면 남한 기자도 북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양=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 안내원들이 기자에게 평양 도심 속 판자촌을 보여준 것은 마지막 일곱 번째 방문 때인 2007년 11월이었다. 세상에나…. 1960년대 동독이 지어주었다는 도심 지역 고층 건물들도 늘 낡고 위험해 보였지만 아파트와 건물 숲 속에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걸인들이나 살 법한 판자촌 단지가 숨어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난생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은 사진에서나 본 듯한 6·25전쟁 직후를 연상시켰다.

안내원이 말했다.


“신 선생. 그냥 보기만 하고 찍지는 마시라우요. 물론 쓰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당이 부지런히 노력했지만 아직 이런 곳들이 조금 남아있는 거요.”


2002년부터 한 해 한두 번 평양을 방문해 취재하는 동안 이런 당부는 일상이었다. 한 번 두 번, 방북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금 조금 더 북한의 속살을 볼 수 있었지만 본 것을 모두 쓸 수는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2002년 6월 첫 방북이 마지막 방북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남루한 행색의 북한 주민들,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얼굴을 가슴에 차고 인민들에게 군림하는 권력자들, 그들이 힘겹게 공존하는 ‘공산당과 노동자의 천국’을 서구 언론의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본 대로, 들은 대로 글로 옮겼다면, 주제는 ‘이 체제는 이러이러 하니 하루 빨리 저러저러 해야 한다’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쉬운 그것이 답은 아니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으로 초대해 준 남북의 초청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갈수록 사명감이 커졌다.


‘지금 기사 한두 건 화끈하게 쓰는 게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많이 와서 봐야지. 그래서 먼 훗날에라도 내가 본 것을 세상에 알려야지. 그렇게라도 이 닫힌 공간에 바깥세상을 알리고 작은 권력에 집착하는 권력자들을 변화시켜야지….


그래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종합시장 도입 이후의 북한 경제 개혁현장 르포‘라는 실용적인 주제에 집중했다. 그들이 나의 방북을 허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기로 한 것만 볼 수 있었지만, 주기적인 방문을 통해 북한 경제의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묘향산 입구 텃밭에 포전(개인 텃밭) 푯말이 작년엔 하나에서 올해는 열개로 늘었네. 평양 개선문 앞 매대(거리 간이상점)에 작년에는 없던 이동식 냉장고가 들어왔네.‘ 등등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전달할 사실들이 많았다.


2012년 1월부터 2년 가까이 AP통신 평양지국장을 지낸 한국계 미국인 진 리 씨(우드로윌슨센터 한국센터장)도 비슷한 고민과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14년 현지에서 만난 그는 취재를 위해 북한 당국자들과 협상하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을 취재해 어떤 보도를 하는지 자유세계에서 허용되는 기본적인 언론 자유가 제한되고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쓸 수 없는 상황은 오해와 비난을 부르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언론계에서는 ’AP통신이 북한 당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정치범 수용소로 상징되는 열악한 인권 상황 등 북한 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눈감거나 호도하고 있다‘는 제기되기도 했다.


장황하게 과거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최근 한국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언론교류가 근본적으로 ’북한 당국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교류의 상대방인 ’북한과 평양의 당국‘은 자유세계의 국가와 민주적인 정부와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북한과의 언론교류는 보통 국가간 언론교류의 일반성보다는 특수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평양 시내 식당에 앉은 기자(가운데)와 북한 안내원(좌우). 북한 당국은 남한 기자가 방문하면 안내원 두세명을 배치한다. 안내하면서 감시도 하고 정보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평양=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모두가 아는 것처럼 북한은 현재 김정은이라는 최고지도자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국가다. 형식적으로는 조선노동당이 지배하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이고 모든 매체는 관영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휘를 받는 모든 매체는 당과 최고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위해 일한다. 그들의 저널리즘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우리가 아는 열린 세상의 저널리즘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다.


물론 김정은에게 진정성이 있다면, 향후 전개될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 개방이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북한이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국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에 북한의 언론관도 정상화될 되기를 바란다. 최고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해치더라도 진실이라면 보도하는 민영 매체가 나오고 남한을 포함한 외부 매체들의 자유로운 접근과 취재도 허용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우선 당장 북한 당국은 남한 언론들의 제안과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북한학계에서는 이를 ’북한 체제의 수용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언론교류는 정보의 소통을 의미한다. 독재체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남한 언론과의 교류는 자칫 독재 체제의 이완을 가져올 수 있다. 남한 기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북한 기자를 남한에 보내는 것도 그렇다.


그것이 체제에 줄 다양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조직을 투자해 통제와 감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 기자를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접근과 취재, 보도를 허용할 것인지, 북한 기자를 남한에 보낸다면 그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감시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적인 기준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 언론계도 준비를 하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 당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어떤 주제는 피해야 하는지를 가릴 줄 알고 북한 당국자들을 설득해 사실과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전문기자 육성과 취재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평양 발 보도들이 서구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잠정적인 기간 동안 생길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언론의 평양 발 기사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 탈북자들의 증언이 다르다면, 매체의 신뢰도 자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양 현지 발 기사의 특수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남북언론교류는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충분한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취재 하듯 경쟁적으로 북측의 문을 두드리기보다 개인과 조직,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성찰을 통해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할 때다.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