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김병연] 소득주도 성장은 북한에 맞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념과 정치를 넘어선 문제다. 인간의 근본인 노동 및 생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되면 자조(自助)와 가족 부양의 기회, 일하는 즐거움마저 앗아갈 수 있다. 복지에 기대기보다 힘써 일하며 열심히 살려는 이들의 의지를 짓밟을 수도 있다. 외환위기도 아닌 시기에 설익은 정책으로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킬 기회를 박탈당한 가장의 눈물을 생각해 보라. 그러기에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파괴하는 것으로 판명되면 정부는 이 정책을 바로 중단해야 한다.
  
통계는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성장률은 떨어졌고 일자리 증가는 둔화됐으며 소득분배도 악화됐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의하면 소득 증가는 소비를 확대시키고 이에 따라 기업은 투자와 생산을 늘린다. 그러나 여기엔 필수적인 가정이 숨어 있다. 소비 증가가 일시적일지 지속될지를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기업인이 우둔하다는 가정이다.
  
소비 증가가 투자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인이 소비 증가를 지속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투자에는 비용과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일시적인 소비 증가라고 예상한다면 기업은 투자를 꺼리게 된다. 비슷한 이유로 정규직 고용도 늘리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면 근로자의 총소비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재정 투입으로 이를 증가시키더라도 인위적으로 부양한 소비 증가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재고 조정과 해외 수입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난다 해도 없던 정책 효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파괴력은 컸다. 소규모 자영업자가 몰려 있는 서비스 부문이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먼저 맞았다. 제조업의 생산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언젠가 버팀목 역할을 하던 재정 여력마저 바닥나면 인위적 참사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경제적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포용 성장의 다른 축과 상충된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과 공정 경제를 묶어 포용적 성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은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공정을 저해할 수 있다. 혁신은 수평적 문화와 자율을 먹고 자란다. 반면 소득주도 성장은 박정희식 국가주도 경제 모델의 판박이다. 차이는 재벌 중심에서 노조 중심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가 소득을 인위적으로 올려주면 장기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사고 자체가 국가의 질서 있는 퇴장과 자율적 시민의 등장을 원하는 시대적 요청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을 ‘복지’로 바꾸어 ‘복지·혁신·공정’을 포용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공정하지 않다. 2016년에도 최저임금 미만으로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13.6%였다. 그 후 두 번에 걸친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그 비율은 20%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노인과 여성 가장, 저학력 근로자가 다수인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가난한 그룹이다.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막기 위해 매년 3조원 이상의 돈을 기업에 지급하는 인건비 보조금은 우리 사회의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몫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소득이 더 높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어떻게 공정한가.

소득주도 성장은 북한과 같은 저개발국에 맞는 정책이다. 최근 북한 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남한의 소득주도 성장은 허황하기 그지없다는 비판을 소개하면서 대신 남북경협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개발국에서는 임금을 높여 주면 근로자의 건강상태가 좋아져 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다. 하루 세 끼를 충실히 먹게 되니 힘이 생겨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갈 돈을 주민에게 돌릴 수 있다면 북한은 소득주도 성장의 유례없는 성공모델이 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해야 할 북한은 오히려 이를 비판하고 있는데 남한은 후진국에나 맞는 성장 모델을 따르겠다고 난리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남한의 가난한 이웃과 북한 주민에게 돌아간다. 정치가 250년에 걸친 경제학 발전을 무시해 일어나는 비극은 남북한 모두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소득주도 성장은 북한에 맞다 (2018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