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갈등이 커질수록 중국이 볼 때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지게 된다.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이 강화될수록 북한의 대미 핵 협상력은 높아지고, 비핵화 협상은 장기화될 수 있으며, 동시에 단계별 보상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역으로 미국 입장에선 복잡한 비핵화 협상에서 벗어나 ‘최대 압박’으로 회귀할 개연성이 커진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3차 남북정상회담(9월 18~20일)을 앞두고 ‘미중관계와 한반도’를 주제로 9월 12일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최근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금 미국과 중국에게는 자국 이익이 북한 비핵화를 앞서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란과 핵문제 협상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올 것 같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서 당분간 발을 빼고 이란 핵협상에 집중하면서 북한과 중국의 반응을 관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판 흔들기는 일단 성공
이날 토론회에는 김 교수를 비롯해 21세기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인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동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가 참석했다. 동아일보에선 윤상호 논설위원 겸 군사 전문기자,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김영식 뉴스룸지원팀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이 참석했다.
김한권 교수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헤징(손실 회피)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과 협력하면서 함께 발전을 추구하지만, 군사·안보적으로는 아시아의 동맹 및 안보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이 만들어온 전후 세계의 질서와 규범에 도전하는 국가가 되려는 것을 막으려 한다.
중국이 경제적 발전에 따른 ‘협의의 부상’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광의의 부상’ 단계로 접어들고 있어 미국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한국은 먼저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협상카드가 아닌 정책적 목표가 되도록 설득하면서 이를 위한 국제여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러시아와 일본 측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어떤 경제적·정치적 이익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알리고 적극적인 역할을 유도해야 한다.
박철희 교수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전략적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손을 대지 못했던 대만과 북한을 동시에 손대고 있다. 무역과 외교에서 강력한 카드로 중국을 억제하려 한다. 북한 문제만 살펴보면 전략적 인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을 통해 북한을 한번 크게 흔들어보겠다고 나오고 있다. 제재와 협상 방법을 동원해 북한이 견딜 수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주변 관련 당사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워한다. 일단 판을 흔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가 협상의 테이블에 너무 가볍게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이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대중국 전략과 설득 논리를 개발해 중국이 우리와 같이 가야 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이유 없이 한국을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 이후 경제협력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70%, 일본이 20%, 나머지가 10%로 예상된다. 만약 북한 비핵화가 실패해 다시 대치할 경우 안전보장 차원에서 한미일 안보 구조를 해쳐선 안 된다.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 변수
이동선 교수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강대국에서 이제 세계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리더가 되려면 추종자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주변국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이 세력권 확립을 위해 가장 먼저 원하는 곳이 북한이다. 한국을 끌어들이고자 한미동맹을 이간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적 압박 속에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북·미 간 불신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미 정상이 과연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진도가 나가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외부에서 북한 체제의 성격이나 노선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 외교가 가능하다. 북한이 과연 현실적으로 쓸모가 큰 핵을 쉽게 포기할까. 북한은 핵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 것이다.
황일도 교수 북한은 지금 미·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계추 외교’를 하고 있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서 한미안보와 주한미군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문제가 반복되는 패턴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은 중국과 독자적인 협상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주한미군과 관련해 유연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도 주한미군 주둔, 종전 선언과 관련해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한반도에 걸린 중국의 이해관계가 크기 때문에 종전 선언 이후 중국이 이 카드를 어떻게 이용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윤상호 위원 지난 20년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은 미흡했다. 중국이 국력이 부족해 역할에 미흡했을까. 지난 몇 년간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정책적 조치들을 살펴보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축소를 위해 수단과 방편으로 사용했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해 북한 비핵화에 영향력을 발휘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는 수단일 뿐이다. 북·미 핵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한 선에서 핵 확산을 막았다’는 정도로 귀결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그럴 경우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다. 미국은 협상은 하지만 북한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설득해 그 결과가 주변국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이날 참석자들은 “북한 비핵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완전한 비핵화에 이를 때까지 우리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