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 동아일보 2019년 3월 5일 A3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로 통일이 10년은 더 가까워졌다. 하노이에서 ‘뒤통수’를 맞아 김정은의 위상이 상당히 실추됐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사진)는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주최한 북핵 및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젊은 지도자로서 모든 게 가능하다고 폼을 잡고 나섰는데 크게 위상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에 밀려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했다가 2년 만에 실각했다”며 “그만큼 공산국가에서 지도자의 위상은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도자의 위상이 체제 유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북한의 이 같은 특성을 파악하고 미국이 의도적으로 ‘하노이 결렬’을 유도했다면 상당한 지략을 썼다”는 것이다.
하노이에 갔다가 빈손으로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추후 ‘톱다운’ 협상 방식을 전면 수정할 거란 전망도 나왔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톱다운 방식의 한계점을 느꼈을 것”이라며 “실무진에 협상을 맡기고 자신은 서명만 하는 방식으로 돌아갈 듯싶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번 재미를 보고 ‘이번에도 잘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부추겼다가 일이 안 풀렸다”며 “(통전부 대신) 리용호 외무상이 이끄는 외무성 라인의 지위가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대단히 큰 카드인 것처럼 내놓으려고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변에 관심이 없었다”며 “‘영변은 폐차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은폐된 핵시설에 관심을 두면서 이를 중심으로 추후 북핵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