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남시욱] 신문의 날에 생각하는 ‘서재필 정신’

남시욱 언론인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오는 7일은 제63회 신문의 날이다. 한국 언론의 선각자 서재필 선생이 1896년 국내 최초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서재필은 1898년 4월 12일 자 이 신문의 논설에서 기자의 직업윤리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신문의 직무와 권리가 대단히 높고 크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신문이 나라의 등불 같은 것이요, 인민의 선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므로 기자는 마음을 천하고 비루하게 가져서는 안 되며 사사로운 감정과 욕심에 사로잡혀서도 안 될 뿐 아니라 남이 듣고 공부가 되도록 말을 하여 줄 학문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논설이 제시한 언론윤리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기사의 공정성과 건전성 및 가독성, 명료성과 간결성, 그리고 국민(독자)에 대한 성실성, 기사의 평이성, 평론에서의 사실 존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오늘의 우리 언론은 한 세기 전의 이 훌륭한 다짐을 지키고 있는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한국의 언론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해 기존 언론 매체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많은 양의 정보가 유통되면서 여론도 초스피드로 형성되는 상황이다.


전통 언론 매체를 무색하게 하는 많은 유튜브 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과거 소련 시대의 사미즈다트가 연상된다. 물론 현대의 유튜브 방송이 자유롭게 사이버 공간을 타는 공개적인 인터넷 매체인데 비해 사미즈다트는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되는 지하출판물이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기 전 약 30여 년간 공산 독재 체제에 저항하던 사미즈다트는 소련의 관영 언론을 제치고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제호가 러시아어로 ‘진리’를 의미하지만 보도와 논평의 내용은 딴판이었다. 이 신문은 공산 독재를 위해 인민들을 속이는 거짓 선전으로 가득 찬 나팔수였다.


최근 한국에서도 KBS가 도올 김용옥 교수의, 사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음해 방송을 내보내 21세기판 프라우다 신문 노릇을 했다. 도올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다 치고, 문제의 심각성은 그런 도올의 엉터리 주장이 전파를 타게 한 방송사에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KBS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사실은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많은 인터넷 방송들이 들고일어나 KBS의 잘못을 지적해 여론을 올바르게 인도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제 주목거리는 KBS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이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하느냐에 있다.


KBS 사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기존 언론 매체에 비해 인터넷 방송의 시청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기존 신문 방송 등 이른바 제도권 언론 매체들이 제대로 보도와 논평을 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 유튜브를 포함한 각종 인터넷 방송을 듣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재필은 당시 사설의 결론에서 ‘신문의 명예를 감하지 않도록 하기를 우리는 깊이 바라노라’고 다시 강조했다. 모름지기 오늘의 한국 언론은 무엇보다도 언론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소생시키는 데 긴요한 언론의 일차적인 책무다.


<출처: 문화일보 2019년 4월 4일자 오피니언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404010731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