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에 따라 북미관계와 미중관계에 걸려있던 마법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북미관계에서는 일순간 표면화됐던 미국의 단계적 비핵화론이 가라앉고 대신 엄격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이른바 보수주의가 다시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북한측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적인 지역정세의 안정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항의한다며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미사일 기술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미국사회에서 생각만큼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른바 빅 딜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미협상이 앞으로 수 개월에 걸쳐 이루어질 경우 기술적으로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영변+α로 범위가 설정될 것인가, 북한의 핵개발체제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가 비핵화의 논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연 그 단계까지 구체적으로 협상을 진전시킬 만큼 북한은 미국과의 성과 만들기에 돌입할 것인가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합의를 위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또 미국이 합의를 중요시한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 북한측에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이를 위해 단계적 비핵화론에 가까운 접근방식을 취하거나 안전보장에 관한 무언가의 약속을 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간에 무역전쟁과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어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홍콩 정세 및 미국과 대만 관계도 미중관계의 불신 구조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엄격한 對 중국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강경책은 관료나 의회, 전문가 등 정책 커뮤니티가 주도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목표는 무역전쟁일 것이다. 미중관계에서의 거래 또는 실질적 문제의 보류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 범주 안에서 미중관계가 북한문제에 대해 전략적 협조를 모색할 가능성은 최근의 중국의 움직임에서 볼 때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인다.
한미관계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둘러싸고 긴장상태에 있다. 한국이 GSOMIA를 종료시킨 것은 한국이 필요로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미일 안보 협력에 균열이 생기고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를 약화시킨다. 관계국가에 있어 안보상의 이익뿐만 아니라 외교적 지렛대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 또는 한국이, 북한과 한미동맹의 운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논의를 할 경우 동맹구조는 더욱 약화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으나, 안보 환경 개선을 중시하고 있으며 미국의 향후 한반도 정책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핵 미사일이 북한의 손 안에 있는 상태가 지속되거나, 핵 미사일 증강에 따라 미국이 군사 옵션을 취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은 일본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일본은 북한의 합의 달성에 대한 의지가 여전히 낮다고 보고 미국이 대북 협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북미 협상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북미협상이 합의 달성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한 전 단계로 신뢰관계 구축을 목적으로 어떤 형태의 행동을 일으킬 경우, 특히 그것이 북한측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일본 정부는 쉽게 합의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