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이달 3일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서울대 명예교수/ 왼쪽에서 두 번째)님을 모신 스누코아 가을 엠티 장면. 사진제공 안교원 회장.
지난달 5일 금요일 저녁 7시다. 이른바 ‘불금’을 즐기러 교정을 떠나는 많은 학생들을 거슬러 일군의 학생들이 사범대 교실로 모여들었다. 밖이 어두워지면서 학생들은 토론을 시작했다.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SNUKOA·스누코아) 회원들에게는 일상이 된 관악산 기슭 교실 속 금요일 저녁 풍경이다.
한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내 다른 학생이 생각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토론은 진행된다. 스누코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활동하는 학내 동아리다. 어느 교수님의 말에, 어느 신문기사에 휘둘리지 말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주적인 이해와 관점을 가지자는 공통의 목표가 이들을 불러 모았다.
민족은 허구인가? 실재인가?
이날 스누코아는 세 조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했다. 1조는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필한 ‘통일헌법의 이해(박영사, 2016)’를 읽은 뒤의 다양한 생각들을 개진했다.
서어서문학을 전공하는 노태구씨는 통일헌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수사를 경계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을 거론한다.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은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1983)에서 주장했듯 민족이라는 개념은 현대적 허구에 불과한데 통일의 당위성을 민족 개념으로 접근하는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의예과 이우빈 씨는 ’동아시아와 역사분쟁‘이라는 교양 수업 교재를 인용하면서 노 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족은 현대적 허구가 아니에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개념입니다.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만주 지역에 사는 조선인을 만주인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미 ’족류‘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민족과 유사한 개념이라는 것. 이어 ’상상의 공동체‘에서 앤더슨이 지칭하는 상상의 공동체란 민족이 아니라 국가(nation)라며 민족은 수백 년 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고 오히려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원문의 ’nation‘이 ’국가‘인데 이것이 ’민족‘으로 잘못 번역되어 국내에서 혼동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과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헌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통일헌법을 체결하면 북한의 대일배상청구권은 소멸되나요? 한국이 이미 1965년에 일본과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종결된 사안인가요?”
“판문점선언의 법적 성격은 신사협정인가요, 조약인가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할까요?”
평화를 ‘힙하게’, 비평화를 ‘구리게’
옆자리에서 2조는 평화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다뤘다. 철학을 전공하는 천영서 씨와 경영학을 전공하는 이수빈 씨는 평화를 ’힙하게(멋지게)‘, 비평화를 ’구리게(지저분하게)‘ 여기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천 씨는 국민국가 단위로 쪼개진 오늘날 세계에서 평화 실현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태도가 변화해서 국민국가의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낙관도 덧붙였다.
3조는 친일(親日)재산을 뒤늦게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률이 정당한지를 다퉜다. 2005년 12월 ’친일재산귀속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고 시행됐지만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3조 2항과의 충돌 문제가 쟁점.
”성문헌법에도 헌법이념과 배치되는 흠결이 있을 수 있기에 국민 법감정을 우선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 법감정도 중요하지만 다수와 강자의 전횡을 방지하려는 성문헌법의 취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정치외교학부 도희진 씨의 생각에 정치외교학부 명재하 씨의 생각이 맞서면서 헌법개정이 필요했다는 의견과 헌법재판관을 선거로 뽑자는 이야기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모임의 안교원 회장(국어교육과 13학번)은 ”회원 모두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로 ’한반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함께 공부하면서 과거와 현재 한반도의 모습을 인식하는 동시에 미래 한반도의 모습은 어떠할지,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헌 우아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