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청년 이으뜸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上>
민화협 1020 청년 기자단으로 활동한지 3년째.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 연길과 같은 북중접경지역을 통해 북한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 우리가 북한을 간다는 건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로 남북관계는 이전과는 180도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고 평양공동선언을 정점으로 화해무드와 평화 분위기가 연일 지속되었다. 그와 함께 민화협도 북과의 교류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북에 한번 가보겠구나’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쥐고 있었다. 우수활동기자 10명의 금강산 방문이 최종 확정되던 날 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북한에 가보는 꿈을 꾸었다. 그 날 이후부터는 가보지도 않았던 금강산을 날마다 꿈에 그리며 밤마다 잠을 설치곤 했다.
꿈에 그리던 북한 그리고 금강산
집결시간은 11월 3일 5시 40분. 전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새벽 2시이다. 집결시간까지 도착하려면 2시간만 자고 일어나야하는데, 늦잠으로 꿈에 그리던 북한 금강산을 정말 꿈에서만 보고 끝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으로 잠을 설치다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무사히 집결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봉 인원 300명은 모두 8대의 버스에 나눠서 탑승하여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을 하였다. 민화협 청년 기자들이 탄 버스는 6호차. 한국노총 관계자들과 함께였다.
고성으로 가는 동안 받은 방북증. 통일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여권이 아닌 통일부장관이 승인한 사람들에게만 발급되는 것이 방북증이라는 설명만 해줬지 실제로 내가 방북증을 접해본 것은 처음이라 얼떨떨하기도 하면서 내 사진과 신상이 담긴 방북증을 받으니 이제야 북을 방문한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X-ray 검사가 되지 않는 북측의 세관절차 덕분에 일일이 손으로 소지품 목록을 적고, 질병 여부와 같은 다양한 서류를 적고 남북의 세관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덧 고성에 도착을 했다.
11월 3일 오전 9시경. 북에는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기에 지인들에게 마지막 통화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일이면 다시 연락을 하겠지만 다른 곳도 아닌 북에 들어가느라 잠시 동안 두절되어있는 그 시간이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라는 복잡한 생각에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진심이 담긴 마지막 말을 남기며 DMZ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실전이야
DMZ 박물관과 통일전망대가 있는 고성은 안보교육과 같은 현장체험학습으로 많이 왔던 곳이었다. 실제로 올해 2월 고성 민통선부터 통일전망대까지 걸어서 방문했던 기억도 있는 만큼 민통선에 방문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늘 지나치기만 했던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에 멈춰 바라본 금강산 28Km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을 향해 금강산으로 이동한 다는 것 그리고 출경장으로 향하여 출경절차를 밟는 과정을 실제로 경험한다는 것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실제로 개성을 갈 수 있는 도라산역 남북출입사무소를 방문하면 출경, 입경 절차를 가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데, 실제 남측의 출경절차 또한 복잡하지 않았고, 방북증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구조라서 손쉽게 출경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들도 이젠 번호판을 가리고 주황색 깃발로 남측 버스라는 것을 표시하고 북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민통선이 아닌 군사분계선이다. 그 누구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가이드가 여기 군인이 남측의 마지막 군인이라고 했을 때, ‘이제 우리를 스스로 지켜야하는구나’라는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군사분계선을 지나 가로수의 모양이 바뀌고 논밭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들이 보였지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바로 남에서 북으로 쭉 이어져있는 철길위에 굳게 닫혀있는 철문이었다. 이 후 처음 맞이하는 북한군인. 통일전망대에서나 판문점 먼발치에서나 보던 북한 군인이 실제 내 눈앞을 지나가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진짜 이게 현실인가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우리는 북측 세관검사를 위해 검사소에 내려 북한 군인들을 직접 마주쳐서 지나가야만 했다. 어렴풋이 세어 본 북한군 다섯 명 정도와 그들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지프차를 보는 순간 그들이 갑자기 저 차로 돌진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부터 오는 공포심에 몸을 덜덜 떨며 통행검사소 안으로 들어갔다.
세관절차는 건강체크를 위해 체온을 측정하고 북한 군인이 통행검사소를 통과했다는 표시로 도장을 찍어주고 짐을 검사하는 것이 전부이다. 짐 검사는 가방을 열어 카메라를 확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는데 내 앞에 사람은 필름카메라를 가져와서 반입이 되지 않았다. 나는 캐리어가 커서 그런지 캐리어를 열어 곳곳을 확인하여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규격에 맞는 DSLR 카메라를 가져가서 무사히 반입이 되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남측과 북측 두 번의 세관검사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 정말 금강산으로 향한다.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금강산까지는 차량으로 15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감상하며 금강산 관광지구로 들어가는 길에 사진으로만 보던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걸려있는 건물 옆을 지나간다. 감호역이라는 기차역인데 실제로 기차가 운행되는 역이라고 한다. 아마 남북 철도가 연결된다면 우리가 북에서 처음 만나는 역이 감호역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점심식사 장소인 옥류동면옥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평양 옥류관 주방장들이 요리를 만들어 옥류관이라는 이름이 쓰였지만, 주방장들이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옥류관이라는 이름 대신 옥류동면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연이 담겨있는 옥류동면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바로 “반갑습니다” 노래와 함께 봉사원이라고 부르는 여성 종업원들의 미소였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기념품 판매대. 다양한 종류의 탄산단물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대동강맥주. 당장 구매하여 맛을 보고 싶었지만 먼저 식사가 준비된 자리로 향했다.
각 자리에는 면수로 보이는 메밀 차와 함께 삼색나물과 전병처럼 보이는 녹두지짐, 각종 양념 그리고 평양소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봉사원에게 물어보니 나물은 실제 금강산에서 나오는 백도라지와 고사리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였으며 녹두지짐은 하얀 양념을 찍어 먹고, 간장양념은 냉면에 넣어먹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평양소주와 함께 나물과 지짐을 먹고 있으니 곧바로 랭면이 나왔다. 메밀 면 위에 닭고기, 소고기 그리고 무와 오이, 계란이 고명으로 오른 랭면의 모습은 평양의 옥류관 냉면만큼 먹음직스러워보였다. 국물을 먼저 마시고 지난 평양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에서 김정은이 설명하였던 것처럼 면에 식초를 뿌린 후 겨자와 양념을 적당히 섞어 먹어보니 여태 대한민국에서 먹어본 평양냉면은 가짜였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감칠맛 나는 랭면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친 후 기념품을 구입 한 후 금강산 호텔이 숙소인 다른 호수 인원들과 달리 6호차 인원만의 숙소인 외금강 호텔로 이동하였다.
특정 그림 앞에만 가면 긴장하는 호텔 직원들
호텔에 들어가니 호텔 봉사원들이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숙소는 트윈베드의 2인실이었으며 LG라는 표시를 가리고 전원버튼 외에는 채널 변경이 어렵도록 조치를 취한 TV 하나와 에어컨이 있었으며 욕실에는 조그맣게 샴푸, 린스. 몸물비누(바디워시), 치약, 칫솔, 빗이 갖춰져 있었다. 1층 로비에는 한시적으로 영업하는 기념품 판매대와 각종 술과 음료를 파는 라운지 바도 자리 잡고 있었다. 외금강 호텔 밖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바위에는 ‘주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호텔에서 3분정도 걸어가면 그림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바로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 사진이다. 기자단 친구들과 함께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눈 깜짝할 새에 호텔직원들이 함께 이동하여 우리가 어떤 사진을 찍는지 긴장한 채로 관찰하고 있었다.
북에서는 김씨 3대 부자들 그리고 관련 인물들이 담겨지는 사진을 굉장히 조심해서 찍어야하는데, 특히 그림이 아웃 포커싱이 되거나 인물 또는 동상이나 그림의 일부가 잘려서 찍으면 안 되기에 우리가 사진을 어떻게 찍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호텔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우리가 찍는 것 보다 호텔 직원이 찍어주는 경우 사진이 문제가 될 일도 없을뿐더러 좋은 사진을 남길 수가 있다. 이렇게 외금강 호텔의 주변을 간단히 둘러본 후 우리는 민화협 공식 행사가 진행되는 금강산 호텔로 장소를 이동하였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공식 행사가 진행되는 금강산 호텔도 외금강 호텔처럼 3분정도 떨어진 곳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금강산 호텔의 외부는 외금강 호텔보다는 낡아보였지만 내부에 들어갔을 땐 그런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1층에는 붉은 백두산 그림이 우리를 반겨주고 왼편으로 기념품 판매대가 있었다. 가격은 옥류동면옥 판매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는데, 옥류동 면옥에서 판매하지 않는 북한 과자들과 예술작품들이 다양하게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사는 2층에서 진행되었다.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북남 민화협 련대모임”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남북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남측 인원이 착용한 민화협 한반도 배지, 그리고 북측 인원이 착용한 빨간 배지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평소 북한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좌석 배치의 경우에도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앉는 등 조직적이고 단합적인 모습이 많이 보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북한 사람들도 자기들이 앉고 싶은 곳에 앉아 앞으로 이동해달라는 요청에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아 중간 중간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북한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