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청년 이으뜸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中>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내 옆자리에 북한 사람이 앉았다. 자리가 협소한 만큼 북한 사람과 옷이 스치는데도 어색하다보니 편하게 인사를 할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북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사전에 이수한 방북교육에서 북한 사람들이 말을 걸면 간단하게 이야기하라는 내용이 있어 서울에서 왔다고 만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 누가 서울에서 온 줄 몰라서 묻는 줄 아십니까? 무슨 미국에서 왔나, 유럽에서 왔나, 참. 내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게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서운하다는 투로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황할 겨를도 없이 “민화협 청년기자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래 그걸 물어보는 거지. 참내”라고 하며 민화협 청년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 사이 연대모임이 시작되었고 남측 민화협 김홍걸 대표와 북측 민화협 김영대 회장의 연설에 이어 주요 남북 인사들의 연설이 1시간 정도 계속 이어졌다. 지루해하는 모습을 남북 사람들 모두의 얼굴에서 관찰할 수 있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
이어서 진행된 축하공연. 여성 9명과 남성 3명으로 이뤄진 밴드가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었다. 여성들의 경우 악기를 연주하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등 역할이 바뀌었다. 남성의 경우 1명은 키보드 연주만 하고 2명만 노래를 불렀다. 반갑습니다, 백도라지, 심장에 남는 사람 외에도 10~15곡 정도의 노래가 이어졌다. 정말 쉴 틈 없이 펼쳐지는 공연에 놀랍기도 했지만,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춤, 상모돌리기와 같은 다양한 소재들을 활용하여 펼친 공연이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환영의 의미를 넘어 같은 흥을 공유하는 민족이 모여 함께 즐기는 자리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기도 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는 청년, 여성, 노동, 농민, 종교, 교육 총 6개 분과로 부문별 상봉모임이 진행되었다. 각 분과별로 남북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회의를 하는 시간인데, 민화협 청년기자들이 각 분과별 서기로 들어가서 회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나는 교육 분과의 서기를 맡았다. 교육 분과의 경우 한국교총과 전교조에 대해 남북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남측 단체들이 합의한 교육 분과에서 남북교류의 방향성이 담긴 글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중에서도 “잘못 만든 제품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잘못 키운 제자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원칙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의미 있었다.
교육 분과뿐만 아니라 각 분과에서 북측의 공통적인 의견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이 주축이 되어 평화와 통일을 구상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참석자들은 특히 대북제제에 대한 불만을 많이 표출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기 전 각 분과별로 지속적인 교류가 진행되었다가 한참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라 북측에서 남측 불참인원에 대한 안부를 물어보는 등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저녁만찬을 위해 금강산 호텔로 돌아가기 전 남는 시간동안 교육 분과의 사람들은 1층 라운지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측 대표자들 중 한명은 대외활동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듯 대학(원)생이라는 본업 외에 기자단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부가적으로 한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민화협 청년기자단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하였다. 나는 어떤 일을 사람인지도 물었다. 특히 내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으뜸이라는 이름이 우리말로는 곱다고 하고, 그쪽 말로는 예쁘다고 하지요”라고 무뚝뚝한 말투로 건네는 한마디의 칭찬으로 깜짝 놀라 웃음을 지었다.
다음엔 평양에 와서 옥류관 냉면을 꼭 맛보시라요
금강산 호텔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위해 사전에 지정된 만찬 테이블로 향했다. 원탁에는 다양한 북한의 술과 음료 그리고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술 종류는 대동강 맥주와 함께 인풍 포도술, 평양주가 있었고, 음료는 배 단물, 배 탄산단물, 탄산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찬 코스요리의 메뉴가 적혀있는 차림표를 통해 만찬 메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말로 적혀 있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음식들도 더러 있었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할지 몰라 각자 앞에 있는 팥소 빵을 먹고 있었다. 옆에 있던 봉사원이 미리 테이블에 놓여있던 삼색 나물과 함께 떡합성이라고 하여 절편, 인절미, 앙꼬떡 이렇게 세 종류의 떡 그리고 닭구이와 말이찜, 우리나라의 가리비 조개인 밥조개깨장무침을 순서대로 덜어주었다. 이후에 나온 음식들도 대체로 슴슴하다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적절한 간이 버무려져 재료 고유의 맛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떡보다 찰기가 덜하였으나 후식으로 나온 단설기(케이크)는 달고 맛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수박은 정말 꿀처럼 달았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 사람 중에는 북측 사람도 있었다.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이라는 청년인데 인상적 대화를 나눴다. 피망을 북에서는 사자고추라고 부르는데 만찬 메뉴 음식들 안에 피망이 간간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김○○ 청년에게 이 채소가 사자고추가 맞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사자고추가 맞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되물어봤었다. 함께 식사한 남측 사람들 중 피망의 북한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은 왜 피망이 사자고추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웃기도 하였다.
이 청년은 평양에 살고 있는데, 오늘 행사를 위해 금강산에 온 것이라고 했다. 점심때 먹은 옥류동면옥 랭면과 평양의 옥류관 랭면의 맛 차이가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옥류동 면옥의 냉면은 그쪽 말로 짝퉁이라고 하고, 옥류관 냉면은 으뜸이지요!” 라며 옥류관 냉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다음에 평양에 오면 꼭 옥류관 냉면을 대접하겠다는 약속까지 하였다. 그에 질 수 없이 나는 우리나라의 소맥을 소개하며 대동강 맥주와 평양주를 섞어 북한식 소맥을 제조해 대접하기도 하였다.
반짝이는 별들은 금강산이 주는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이었다
흥겨운 저녁만찬과 함께 북측 사람들과의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민화협 공식 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숙소인 외금강 호텔로 향했다. 저녁시간에만 한시적으로 여는 기념품 판매대에서 다양한 기념품들을 구매하고 민화협 청년 기자단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 밤 외금강 호텔의 하룻밤은 여기가 정말 북한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사연들이 두 건이나 있었다.
먼저 외금강 호텔의 난방은 가스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북제제로 인해 예전처럼 남측에서 가스를 가지고 이동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자야했다. 이렇게 대북제제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연은 바로 정전이었다. 기자단 친구들과 미리 준비해준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는 중에 갑자기 정전이 됐다. 칠흑같이 깜깜해진 숙소에서 우리는 당황한 나머지 있지도 않은 휴대전화의 라이트를 찾기도 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 북한 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우스운 이야기도 나눴다. 잠시면 끝날 줄 알던 정전이 오랜 시간 지속되다보니 우리는 다른 건물에도 정전이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밖을 보던 중 잊지 못할 뜻밖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 줄기의 인공적인 빛도 없는 금강산의 하늘은 정말 쏟아질 듯 한 별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시골에서나 북두칠성 정도를 찾아 볼 수 있다면, 금강산에서는 별은 너무도 많아 북두칠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 속 별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빛날까? 라는 상상을 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눈앞에서 바라보던 그 순간은 감동을 넘어 황홀한 시간이었다. 얼마 후 다시 전기가 들어와서 불이 켜졌지만 우리의 별무리 관찰은 한참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한동안의 소동이 끝난 후 침대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자 금강산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저녁까지도 나오지 않던 따뜻한 물이 다음날 아침에는 제법 나와 세면을 할 수 있었다. 둘째 날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야 하니 간단하게 짐을 정리한 후 우리는 조식을 먹기 위해 식사장소로 향했다. 조식은 뷔페식으로 각종 김치, 나물과 두부, 돼지고기, 청어조림 등과 함께 죽, 밥, 된장국과 미역국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을 떠서 자리에 앉으면 봉사원이 보자기에 담긴 컵과 수저를 가져와 금강산 샘물과 함께 세팅을 해준다. 우유도 선택하여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유보다는 탈지분유를 물에 탄 듯 한 달달한 연유 맛이 나는 우유였다. 독특했던 메뉴 중 하나는 얇은 빵 사이에 버터와 팥이 함께 들어간 것이었다. 흔히 남측에서 앙버터빵이라고 불리는데 북한에서 어떻게 이런 빵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낯선 익숙함으로 북한식 앙버터빵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