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Q. 한반도에서도 통일 이후에 남북 간의 사회통합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 상황에서 남북한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잠재적 요소는 무엇이며, 이러한 리스크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겁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결혼 후에 잘 사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통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 다른 체제가 통일을 이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통일 이후 통합을 이루는 것은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한반도 평화의 종착점은 흔히 통일로 이야기되지만, 어쩌면 통일은 평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이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인 것처럼 말이죠.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도적 통합과 사회적 통합입니다. 제도적 통합은 말 그대로 제도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은 각기 상이한 법과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북한에는 무상의료제도가 있고 남한에는 건강보험(의료보험)제도가 있죠. 현재 남과 북이 통일 이후 상이한 법과 제도를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행 중에 있습니다. 통일이 언제 될지 또 통일의 방식이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제도적 통합은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비제도적 영역의 통합, 즉 사회적 통합입니다. 남북은 70년 가까이 분단되었고 그 사이 이념, 가치관, 정체성, 문화, 사회적 통념 등의 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은 불가피해보입니다. 독일은 통일 직후 범죄율이 급증하였습니다. 사실 체제 전환기에 범죄 증가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 시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격변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종의 무규범 상태가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극심한 심리적 불안과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이는 일탈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경제위기, 심리적 스트레스 등으로 젊은이들의 알코올 중독 및 자살률이 증가하였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바는 북한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하위문화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통일 이후 동독 출신 주민들은 이른바 ‘2등 시민’으로 전락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은 주류사회 문화에 저항하는 ‘하위문화’를 형성하였고 일탈이 곧 문화로 통용되는 집단적 아노미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적지 않은 동독 주민이 여전히 통일 독일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등 동서독 간의 사회통합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입니다. 28년 간 분단되었던 독일도 상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70년 가까이 분단된 남북의 사회통합은 더 험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달라진 남과 북이 똑같아질 수 있다, 또는 똑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을 바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으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차별, 노인차별, 인종차별, 학벌차별 등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무수한 차별의 층위를 생각하면 과연 통일되었을 때 우리에게 사회통합을 이룰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그동안 벌어진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이질성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차별이나 소외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사회적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모처럼 남북관계가 순풍에 돛단 듯 순항 중입니다.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나라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전쟁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통일에 대한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요즘, 이제는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통일이 너무 요원한 문제로만 여겨졌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여력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남북관계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것처럼, 통일도 불현듯 찾아올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