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포커스

제목‘낀 국가’의 숙명과 처세의 교훈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 3

● 러시아 한국에 빌런(불량 국가)’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국립외교원 이태림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역할과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이 크지 않다고 해도 빌런(villian·불량 국가)’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처럼 공공연한 대러 비난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이나 공급은 물론 폴란드 등을 통한 무기 지원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직간접적인 무기 지원은 러시아가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역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 국면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강조되고 있지만 동북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견제를 위해 한국 카드를 두고 싶어한다며 러시아가 끝내 한국 카드를 버리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우크라 사태로 강해진 중-러 협력, 내구성은?

 

신범식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가해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이 중앙유라시아를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이익을 조율,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러시아가 구상하는 다극 질서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동의할 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엄구호 교수는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 두 개의 전선을 갖게 되어 대중 압박이 약해질 수 있어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가장 큰 수혜국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도 커졌고 그동안 실체가 불분명했던 브릭스(BRICS·러시아 중국 인도 남아공 브라질 5개국 협의체)도 러시아를 지지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엄 교수는 전쟁 장기화에 따라 서구나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러 밀착이 강화되는 것도 미국 국익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대러 협상이 필요하며 이 협상 결과가 러시아의 국제사회 복귀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 -적대적 공존으로서의 우크라이나 전쟁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밑바탕에는 유라시아 패권 장악을 놓고 미러가 벌이는 권력투쟁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구소련 해체 이후 미국 주도의 나토 동진에 대한 반발을 이어왔는데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적 개입도 냉전시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복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홍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의 증폭을 통해 양측이 모두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적대적 공존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 약화됐던 나토의 결집력을 복구하고 유럽연합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자 했는데 러시아를 외부 공통의 적으로 한 안보 위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됐다고 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유럽이 미국에 의존적인 안보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쟁 장기화로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미국이 구상하는 이같은 지정학적 목표들은 대부분 달성됐다는 것이 홍 교수의 분석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나토의 동진과 팽창 차단에만 그치지 않고 냉전 종식 이후 구축된 국제질서에 대한 재편을 노리고 미국과 유럽, 유럽내 각 국의 분열도 노렸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같은 지정학적 요인 외에 제국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탈냉전 이후 손상된 대국적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오랜 기간 중국에 가려져 있던 러시아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다시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불법 침략전쟁에도 불구하고 푸틴에 대해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홍 교수는 이밖에도 푸틴의 장기 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목적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