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포커스
●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기회 요소는 없나
고상두 연세대 교수는 21세기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중국의 부활과 러시아의 부활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제국의 부활은커녕) 쇠약의 길로 가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에는 안보 리스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했다. ‘낀 국가’ 운명과 비극이 있지만 강대국이 싸울 때 제3의 국가가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는 수출이 제한된 러시아 석유를 ‘우호 가격’이라며 35달러에 구매하고 있다며 미국의 제재를 적용해 할증된 가격에라도 러시아 석유를 구매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한-러간 행위의 주체를 국가나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과 시민사회 등으로 바꿔 활용해서 경색을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방 기업이 철수해 수입 대체 산업 육성 필요성이 큰 러시아에 카자흐스탄을 통한 우회 진출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40%까지 높였다가 대러 제재 국면에서 타격이 큰데 대중 무역 의존도가 25%인 한국에는 미국 유럽으로의 시장 다변화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한미 동맹이 중요하지만 경제 뿐 아니라 대미 편중 안보에서 ‘안보 다변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에서 미국이 한 발 더 나아가 패권정책을 포기할 경우 한국 안보에 소홀하거나 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고 나토와도 안보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 러시아 제재 참여하면서도 한-러 협력도 지속되어야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미국 등 서방의 대러 제재가 포괄적이고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고립이 심화될 전망이라며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교류 협력이 가능한 분야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협력 분야와 방향에서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의 수요가 큰 디지털 분야가 중장기적으로 유망하고 IT 분야에서 한국의 하드웨어와 러시아의 소프트웨어의 상호보완성이 특히 크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IT 분야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어 첨단 산업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종호 한러비즈니스협의회(KRBC) 대표는 서방의 대러 제재 강화로 러시아 내에서 “서방과의 경제 관계는 끝났다”는 분위기마저 있다며 한국에는 협력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30년 이상 사업을 해온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은 “노태우 정부 이후 북방정책은 한국의 국시(國是)였다”며 큰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도 한국 대러 제재 참여로 비우호국으로는 지정했으나 무비자 협정에 따라 비자발급에 어떤 제한도 없다고 했다. 한국 항공사가 우크라이나에 4000만 달러 지원 물품을 수송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1억 달러의 추징금 명목의 보복을 했지만 미국과의 동맹국인 한국이 제재에 동참한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암묵적인 양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제재가 장기화하면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넘겨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핵잠 기술은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핵잠수함에 탄두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적일 수 있다.
박 대표는 대러 제재에 한국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진 하산에 대한 한국의 독자 제재는 지난 정부에서 해결했어야 한다며 “있지도 않은 미국의 눈치 보기”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란의 원유 수입을 지속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했다.
엄 교수는 “시장, 에너지, 물류 등의 성장 인프라를 제공하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북방정책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통한 러시아와의 간접적 경제 협력도 모색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구자룡 기자·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