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포커스
제목6·25 정전 70년, 현재를 찾는 과거로의 여정[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프롤로그]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형제의 상’이 있다. 전선에서 총부리를 겨누던 상대가 알고 보니 헤어진 형제인 것을 형상화했다. 동생이 형의 품에 안겨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올려다보고 있다. 그 생생함과 절절함이 절로 느껴진다. 실제로 북한군은 전쟁 중 많은 청년들을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징발했다. 전투에서 부자, 형제가 총을 쏘다 친혈육인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형제의 상’, 국군 형의 품에 안긴 북한군 복장 동생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이 상은 국군 8사단 16연대의 형과 북한군 8사단 83연대의 동생이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만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6·25 전쟁 ‘동족상잔’과 비교될 바는 아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랜 기간 피와 역사, 문화를 공유했던 땅과 사람에 대한 침략인 점에서 6·25를 닮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처리가 ‘전쟁 중 분할된 상태로 정전 체제가 유지되는’ 한반도 모델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한반도 모델’은 따라와서는 안 될 매우 안 좋은 사례다. 오히려 국토와 민족이 갈라진 상태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요일 새벽 느닷없이 발생한 6·25 전쟁 같은 무도한 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벌어질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더욱이 북한은 소련제 T-34 탱크와 앵앵거리는 야크기를 몰고 왔다가 미군의 막강한 공군과 화력 앞에 굴복했던 당시와 다르다. 핵무기,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 1만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개발해 남한을 ‘핵 볼모’로 삼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점차 높아지는 한반도의 안보 불안과 지정학적 단층지대의 숙명의 뿌리에는 분단과 6·25 전쟁이 있다.
미국에서 6·25 전쟁은 오랜 기간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에서는 6·25가 몇 년에 발생한 전쟁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져도 되는 전쟁인가?
맥아더 극동군사령관의 대변인이자 인천상륙작전 기획에 참여했던 에드워드 로우니는 ‘운명의 1도’ 서문에서 “한국전쟁은 한국에서 벌어졌지만 한국인이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북핵 위협 속 6·25 전쟁 정전 70년을 맞아 몇 가지는 기억하고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긴 여정을 시작한다.
<6·25 전쟁 참여국의 착오와 실패>
착오와 실패 | |
미국 | -극동방어선에서 한반도 제외해 공산 세력 침략 자극 -전쟁 초기 북한군 과소평가 -중공군 개입 전후 중공군 과소평가 -중공군 불참 오산으로 압록강 돌진 |
소련 | -미국 불참 오판 -미중 적대화 음모 |
중국 | -미국 불참 오판 -압록강 도하 후 능력 과신해 38선 넘어 남진 -소련의 지원 받지 못하고 향후 중소 분쟁에 영향 -참전으로 미국 대만 지원으로 전환 -유엔 가입 늦어지고 국제사회에서 고립 |
남한 | -김일성의 남침 경각심 부족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이 미국 오도 -좌우익 대립과 혼란으로 안보 체제 취약 -미군 철수 요구 여론이 안보 약화 초래 |
북한 | -미국 불참 오판 -남침 후 남한 20만 명 봉기 호응 오산 -전쟁으로 고립, 피폐, 침체 |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소장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