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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영천이 무너지면, 인천상륙도 없다” 철수만 3차례 고민한 미군(3)[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트루먼과 맥아더의 ‘철수’ 공방 
  
전쟁 중 주요 현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거나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도 했던 트루먼과 맥아더는 미군 철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트루먼은 “부산교두보로 물러설 때까지 점차 전선을 축소하고 그다음에는 철수하는 것뿐이다는 것이 맥아더의 견해”라고 했다.(트루먼, 409쪽)

트루먼은 맥아더가 ‘유엔군이 오랜 싸움으로 지치고, 부당한 비판에 분격해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면서 반대이유가 없으면 전술적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속도로 한반도에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했다.(트루먼, 409쪽). 하지만 맥아더가 1월 10일 최대한 신속히 한반도로부터 철수하자고 제안한 것은 자신의 ‘4개항 대중 강경 방안’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따른 것이었다. 대규모 중공군 개입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에서 철수하고 자신의 원래 기본적 임무인 일본 방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이상호, 322쪽)

미 합참이 “중공군에 금강까지 밀리면 일본으로 철수하는 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철수 실행 여부는 자신에 맡긴 것을 두고 맥아더는 강하게 반발했다. 맥아더는 합참의 메시지는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의사는 없는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의 구상은 반격이 아니라 무난하게 도망하는 것, 대만의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전세를 만회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회피를 택하려는 것이라고 했다.(맥아더, 245쪽)


극약을 지니고 있던 대통령 부부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중공군 참전 이후 밀리는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총과 극약’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과 나는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있으면서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통령의 권총과 함께, 보다 확실한 천국행 티킷을 각자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무엇(극약)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무자비한 대량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프란체스카 일기, 1951년 1월 1일) 

참고 문헌
김철수 지음, 『그 때는 전쟁, 지금은 휴전 6·25』, 플래닛 미디어, 2017.
더글러스 맥아더 지음, 『맥아더 회고록』, 1, 2권, 일신서적, 1993. 
매슈 B. 리지웨이 지음, 박권영 옮김, 『리지웨이의 한국전쟁』, 플래닛미디어, 2023.
백선엽 지음, 유광종 정리, 『백선엽의 6·25 전쟁 징비록』 2권, 2020.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 지음, 최필영 윤상용 옮김, 『이런 전쟁』, 플래닛미디어, 2019.
이상호 지음, 『맥아더와 한국전쟁』, 푸른역사, 2012. 
이승만 구술, 프란체스카 지음, 조혜자 옮김.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기파랑, 2010.
정일권 지음, 『전쟁과 휴전- 6·25 비록 정일권 회고록』, 동아일보사, 1986.
해리 S. 트루먼 지음, 손세일 옮김, 『시련과 희망의 세월-트루먼 회고록』 하, 1968.
『1129일간의 전쟁 6·25』, 육군본부 육군군사연구소, 2014.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