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포커스
제목상처투성이 정전협정 70년(2)[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 한·미·중, 영화 속의 6·25
영화 상감령 포스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2011년 1월 19일 백악관에서 국빈만찬이 열렸을 때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郞朗)이 ‘나의 조국’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이 노래는 중국이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로 제작한 영화 ‘상감령’의 주제곡. 중국에서는 국가와 비슷하게 여기는 곡이다. 2008년 ‘중화부흥’을 주제로 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먼저 울려 퍼진 곡이다.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의 삼각고지와 저격능선 부근에서 있었던 상감령 전투는 중공군이 6·25 전쟁에서 세계 최강 미군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선전하는 전투다. 가사는 어떤가. ‘승냥이와 이리가 침략해오면(若是那豺狼來了), 엽총으로 맞이할 것이네(迎接的有獵槍)’ ‘승냥이와 이리’는 물론 미군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가사의 의미를 모르고 곡조만 들었을 것이다. 요즘 같은 미중 갈등 시대라면 백악관에서 연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한국, 영화로 되살아나는 6·25
‘인천상륙작전’(2016)은 해군 첩보부대와 켈로부대(KLO)가 상륙작전 직전 인천에서 기뢰 부설 등을 포함한 북한의 정보를 수집해 유엔군에 전달하고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팔미도의 등대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수의 대원들이 희생되는 내용이다. ‘국제시장’(2014)은 흥남철수부터 베트남 전쟁 파병까지 한국군이 치렀던 두 개의 전투가 모두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 ‘고지전’(2011)은 정전협정 발효 순간까지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상황을 가상의 애륵고지 쟁탈전을 통해 보여준다. 정전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발효까지 아직 12시간 이상 최후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는 장면들이 긴 잔영을 남긴다.
포화속으로
‘포화속으로’(2010)는 1950년 8월 11일 학도병 71명이 포항여중(현 포항여고)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옥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장사리-잊혀진 영웅들’(2019)도 인천상륙작전이 있던 날 양동 작전을 위해 영덕 장사리 해안으로 상륙작전을 펴다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던 학도병 부대인 ‘명부대’의 활약과 희생을 소재로 했다. 1977년에도 ‘학도의용군’이 개봉됐다.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 휘날리며’(2005)는 전쟁 발발부터 휴전까지 3년의 전쟁 기간을 한 형제의 궤적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낙동강방어선을 포함한 주요 전투들이 두루 나오고 길거리에서 모병관에 의해 학도병이 충원되고, 형제가 북한과 남한 군대로 갈라서게 되는 등 전쟁의 여러 측면을 담아 ‘6·25 전쟁 종합판’이다.
웰컴투 동막골
‘웰컴투 동막골’(2005)는 산간 오지 동막골에 불시착한 미군 조종사와 우연히 이곳을 지나게 된 3명의 인민군, 2명의 국군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정전 협정 체결 직전 마지막 전투였던 베티고지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로는 ‘베티 고지의 영웅들’(1980), ‘격퇴’(1956)가 있다.
전장과 여교사
‘전장과 여교사’(1966)는 개전 직후인 7월 초 6사단 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격파한 ‘동락리 전투’를 소재로 했다. 당시 동락초 김재옥 교사가 국군에게 북한군의 동향을 알려 전투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빨간 마후라’(1964)는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영화로 공군을 소재로 했다. 1952년 경남 사천기지에서 강으로 이동한 제10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 9명의 활약을 담았다. 주인공인 편대장 나관중 소령은 6·25 전쟁 중 203회 출격 기록을 세운 공군 조종사 유치곤 장군을 모델로 했다.(김용호, 162쪽)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시가전 등을 담았다.
‘5인의 해병’(1961)은 귀신 잡는 해병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전쟁영화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통영과 인천상륙작전 등과 함께 해병대의 ‘5대 대첩’으로 불리는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지구 전투(1951년 6월)와 김일성고지 전투(1951년 8월) 등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김용호, 147쪽)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등은 백선엽 장군의 다부동 전투 등을 다룬 영화 ‘나를 쏴라’(가칭) 제작을 추진 중이다.
디보션
미국, 장진호 영화만 몇 편
미국에서 오랫동안 한국전쟁은 인기도 없고 잊힌 전쟁이었다. 그런 탓에 할리우드 제국을 거느린 미국에서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도 거의 없다. ‘도라 도라 도라’(1970),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미드웨이’(2019) 등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대작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과 대비된다. 다만 혹한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성공적인 철수를 했다고 자부하는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눈에 띈다.
‘디보션’(2022)은 장진호 전투에 공중 지원에 나섰다가 비상 착륙한 뒤 사망한 해군 첫 흑인 조종사 제시 브라운을 소재로 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 나온 ‘장진호 전투’(1952년)의 원제는 ‘후퇴는 무슨!(Retreat hell!)’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흥남으로 철수한 미 해병대 장교가 자신들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으로 전진하는 작전을 펴고 있다며 한 말에서 따왔다. ‘싸우는 젊은이들’(1961)도 장진호 전투에서 벌어진 해병대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생 들어보지 못했고 처음 와보는 곳에서 치러야만 했던 미군들의 희생을 그리고 있다.(김용호, 126쪽)
1962년 제작된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미군 포로가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도록 세뇌를 당해 공산주의자의 조종을 받는 암살 기계가 된다는 내용이다. 1959년 리처드 콘든의 소설 ‘만주가 만든 대통령 후보’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장진수문교
중국, 애국심 고취 영화 제작 잇따라
중국에서는 미중 갈등 속에 애국심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적이 되어 싸웠던 ‘항미원조’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장진호’(2021년)는 미중 갈등 속에서 애국심에 편승해 많은 중국인들이 관람했다. 중국은 병사들의 희생과 영웅 정신을 그린 것으로 혹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국을 퇴각시켰다고 선전한다. ‘장진호 수문교’(2022)도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철수할 때 지나야 하는 황초령의 수문교 쟁탈전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1953 금성대전투’(2020년·원제 금강천)는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7월 강원도 화천 북쪽에서 벌어진 금성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미군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등 중공군의 참전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선전물 영화다.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아 국내 수입이 추진되자 여론이 악화돼 수입사가 상영을 철회했다.
중국 관영 중앙(CC)TV가 40부작 드라마로 방영했던 중공군의 참전 과정을 영화 ‘압록강을 건너다’도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남도현 지음, 『6·25, 끝나지 않은 전쟁』, 플래닛미디어, 2010.
문관현 지음, 『임진스카웃』, 정음서원, 2022.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